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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식품

[당뇨 식단] "묵밥은 살 안 찌고 혈당 착할까?" 도토리묵의 배신과 묵밥 섭취 가이드

발자취 | 건강 에세이

자정 12시, 야간 근무의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는 시간이다. 뻐근한 목을 한 번 돌리고, 비몽사몽한 상태로 식당 쪽으로 발을 옮긴다. 오늘 메뉴가 ‘묵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반가웠다. 기름이 번들거리는 튀김이나 짠 찌개보다는 낫겠지, 도토리묵은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하니 당뇨에도 그럭저럭 괜찮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가 먼저 올라왔다.

그런데 막상 식판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아서,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육수 속에 묵과 밥이 잠긴 그릇을 보니 숟가락이 쉽게 들리지 않았다. 당뇨 진단 이후 몸에 밴, 일종의 ‘성분부터 따져보는 습관’이 저절로 켜진 것이다.

“이 차가운 한 그릇이, 과연 지친 내 췌장에 휴식을 줄까, 아니면 한 번 더 채찍질을 할까?”

오늘은 야간 근무자이자 당뇨인으로서 식판 앞에서 했던 고민 그대로, ‘도토리묵과 묵밥의 진실’을 조금 깊게 파고들어 보려 한다. 우리가 대충 ‘건강식이겠지’라고 믿어 온 이 메뉴 뒤에 어떤 혈당의 함정이 숨어 있는지, 하나씩 짚어본다.


도토리묵의 두 얼굴: 자연의 선물인가, 전분 덩어리인가?

묵밥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주재료인 ‘도토리묵’부터 정리하고 가야 한다. 도토리묵은 흔히 ‘살 안 찌는 자연식’, ‘해독 작용이 뛰어난 건강식’이라는 이미지로 소비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도토리 속 ‘아콘산’은 체내 중금속 배출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고, 타닌 성분이 지방 흡수를 어느 정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혈당이라는 관점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1) 도토리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도토리묵을 만드는 과정을 떠올려 보자. 도토리를 갈아 물에 담가 떫은맛(타닌)을 빼고, 섬유질이 섞인 건더기는 걸러낸다. 그런 다음, 가라앉은 하얀 앙금(전분)만 따로 모아 끓여 굳힌 것이 우리가 먹는 묵이다.
결국 우리가 숟가락으로 떠먹는 탱글한 묵은 도토리의 섬유질은 거의 제거되고, 순수한 ‘전분(탄수화물)’만 남은 형태라고 보는 게 맞다.

2) 의외로 높은 혈당지수(GI)

‘묵은 칼로리가 낮으니까 혈당도 낮겠지’라는 생각은, 당뇨인이라면 한 번쯤 했을 법한 오해다.

“한국인 다빈도 탄수화물 식품의 혈당지수(GI) 연구에 따르면, 도토리묵의 GI는 약 71.7로 측정되었다. 이는 현미밥(약 55~60)보다 높고, 백미밥(약 70~80)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으로, ‘고혈당지수 식품’ 범주에 속한다.”

출처: Kim DY et al., British Journal of Nutrition (2019) 및 관련 영양학 자료 재구성

도토리묵은 수분 함량이 약 80% 이상이라 같은 무게만 놓고 보면 탄수화물 총량은 밥보다 적다. 그렇다고 해서 몸속에서의 소화·흡수 속도(GI)까지 느려지는 건 아니다.
전분이 이미 호화(gelatinization)된 상태인 묵은 소화 효소와 만나면 빠르게 포도당으로 분해된다. 혈당 입장에서는 이게 도토리묵의 첫 번째 배신이다.


묵밥, ‘한 그릇’이 주는 위험한 착각

도토리묵 자체만 간장에 살짝 찍어 먹거나, 채소와 함께 무침으로 먹는 수준이라면 큰 문제는 아니다. 도토리묵 100g(반찬으로 나오는 1/4모 정도)의 탄수화물은 10~13g 정도라, 밥 1/5공기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묵밥’이 되는 순간, 이야기가 바뀐다. 이때부터 이 음식은 고탄수화물 한 그릇에 가깝다. 묵밥은 묵만 먹는 요리가 아니라, 실제로는 [묵 + 밥 + 면(또는 사리) + 육수]가 한꺼번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 종합세트’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 식당이나 급식에서 제공되는 묵밥 한 그릇의 구성을 영양성분 기준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도토리묵 단품 vs 묵밥 한 그릇 영양성분 비교

구분 도토리묵 (100g, 반찬용) 묵밥 1인분 (약 900g, 식당용*) 증감률
열량 약 45 kcal 약 640 kcal 약 14배 증가
탄수화물 약 10g 약 128g 약 12배 증가
단백질 0.2g 약 15g 계란/고명 포함 시 증가
나트륨 5mg 미만 약 2,000mg 약 400배 증가
특이사항 혈당 부하(GL) 낮음 혈당 부하(GL) 매우 높음 식후 고혈당 위험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영양성분 DB 및 램프쿡 자료 재가공 (식당 제공량 기준이므로 가정식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

표를 보면 감이 바로 온다. 묵밥 한 그릇을 국물까지 비웠을 때 들어오는 탄수화물은 128g 수준이다. 당뇨 환자의 한 끼 권장 탄수화물이 보통 45~70g(밥 2/3공기~1공기) 사이인 걸 생각하면, 한 끼에 두 끼 분량의 탄수화물을 쏟아붓는 셈이다.


야간 근무자에게 묵밥이 더 위험한 이유

특히 나처럼 밤을 새우며 일하는 교대 근무자에게, 묵밥처럼 ‘액체에 가까운 탄수화물 식사’는 더 부담이 된다. 여기에는 단순 기분 문제가 아니라, 생체 리듬이 얽혀 있다.

1) 밤에는 인슐린도 지친다

밤이 되면 멜라토닌이 분비되면서, 췌장의 인슐린 분비 능력과 말초 조직의 인슐린 감수성이 떨어진다. 같은 양의 밥을 먹어도 점심에 먹었을 때보다 새벽 2시에 먹었을 때 혈당이 더 높이 오르고, 내려가는 속도도 느리다.
이 상태에서 소화가 빠른 묵과 밥, 설탕이 녹아든 육수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혈당 스파이크는 거의 예정된 수순이 된다.

2) ‘마시는 식사’의 함정

묵밥은 구조상 국물 음식이다. 씹기보다는 마시듯이 넘기기 쉽다. 저작(씹는) 시간이 짧아지면 뇌의 포만중추가 제대로 자극되지 않아 식사 속도는 빨라지고, 혈당은 급하게 튀어 오른다.

게다가 시원한 냉국 육수에는 맛을 잡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설탕과 액상과당이 들어간다. 차가운 온도는 단맛과 짠맛을 둔하게 만들어, 따뜻한 국물보다 더 많은 당과 나트륨을 먹게 만든다.

“차가운 면 요리나 묵밥 육수의 시원한 맛 뒤에는, 혀를 속이는 설탕과 소금이 숨어 있다. 국물을 마신다는 건, 결국 희석된 설탕물을 함께 마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야간 식판 앞에서 내가 묵밥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메뉴와 비교해 본 ‘묵밥’의 위치

그렇다면 묵밥은 우리가 흔히 먹는 다른 한 그릇 메뉴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까. 식당에서 자주 보게 되는 면·국밥류와 비교해 봤다.

[표 2] 묵밥과 대안 메뉴들의 혈당 위험도 비교

메뉴명 탄수화물 구성예상 혈당 반응 (위험도) 비고
묵밥 묵(전분) + 밥(백미) + 국수 + 설탕 들어간 육수 높음 (High) 국물 섭취량에 따라 위험도 급상승
잔치국수 소면(밀가루) + 육수 매우 높음 (Very High) 정제 밀가루 + 빠른 흡수
비빔밥 밥 + 각종 채소 + 계란 + 고추장 중간 (Medium) 채소·단백질이 완충 역할 (고추장 양 조절 필요)
설렁탕 밥 + 고기 국물 + 소면 중간~높음 밥을 말지 않고 따로 먹으면 ‘중간’ 정도로 조정 가능

이렇게 놓고 보면, 묵밥은 잔치국수보다는 약간 나은 편이지만, 채소와 단백질이 풍부한 비빔밥보다는 혈당 위험도가 높은, 말 그대로 ‘주의해서 먹어야 하는 메뉴’에 가깝다. 특히 국수 사리와 밥이 동시에 들어간다는 점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당뇨인, 묵밥을 포기하지 않고 먹는 ‘생존 전략’

그렇다고 회사 식당에 나온 메뉴를 매번 피하거나, 묵밥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굶을 수도 없다. 현실적인 회사 생활 안에서, 그리고 더운 날 가끔은 별미로 묵밥을 먹고 싶을 때, 혈당을 덜 흔들면서 먹는 방법을 정리해 본다. 핵심은 **‘분리해서 먹기’**와 **‘과감히 남기기’**다.

1단계: 주문·배식 단계 — “밥은 따로 주세요”

식당에서 주문할 수 있다면 “밥은 말지 말고 따로 주세요.”라고 먼저 말해 둔다. 급식 형태라면, 국그릇에는 묵과 육수 위주로 받고 밥은 식판 밥 칸에 따로 담는다.
밥을 국물에 말아두면 밥알이 불면서 전분이 국물로 빠져나오고, 이 전분이 다시 빨리 흡수되는 탄수화물이 된다. 밥을 따로 두는 것만으로도 속도는 늦출 수 있다.

2단계: 섭취 순서 바꾸기 — “채소와 단백질 먼저”

묵밥 안에는 보통 김치, 오이, 상추, 김가루 같은 고명이 조금씩 들어간다. 여기에 반찬으로 나물이나 콩류, 계란이 있다면 더 좋다. 순서를 이렇게 잡아본다.

  1. 콩나물·나물류(식이섬유)를 먼저 천천히 씹어 먹는다.
  2. 메추리알이나 두부, 계란 같은 단백질 반찬을 그다음에 먹는다.
  3. 그다음에 도토리묵을 건져 먹는다.
  4. 마지막으로 밥을 조금 곁들인다.

이 순서만 지켜도 혈당이 갑자기 튀어 오르는 속도를 꽤 줄일 수 있다.

3단계: 과감한 선택 — “국물은 과감히, 밥은 절반만”

가장 중요한 단계다. 묵밥의 포인트인 시원한 육수, 솔직히 맛있다. 하지만 세 숟가락 정도 맛만 보고 내려놓는 게 낫다. 나트륨과 액상과당의 대부분은 국물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젓가락으로 묵과 채소 건더기만 건져 먹고, 밥은 평소 양의 절반 정도만 먹는다.
이미 묵(전분)을 꽤 먹었기 때문에, 밥까지 평소대로 비우면 탄수화물 과잉이 된다. 이때는 “묵이 밥의 일부를 대신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4단계: 식후 10분만이라도 몸을 움직이기

야간 근무 중이라 운동할 여유는 거의 없지만, 식사 후 의자에 기대 바로 잠들어 버리기보다 10분만이라도 서 있거나 복도를 왕복하면서 천천히 걸어 준다. 밤 시간대에는 근육이 포도당을 끌어다 쓰는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몸을 조금 움직여 혈당을 태워줘야 한다.


완벽한 식단은 없지만, 조절하는 나는 있다

오늘 야간 식사 시간에도 결국 나는 묵밥을 먹었다. 다만 예전처럼 국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시지는 않았다.
먼저 콩나물을 천천히 씹어 먹고, 메추리알 몇 알로 배를 살짝 받쳐 둔 다음, 묵밥 속 묵과 채소 건더기를 건져 먹었다. 밥은 두어 숟가락만 뜨고 그만 뒀다. 국물은 차가운 맛만 혀끝으로 느끼고 그대로 남겼다.

식후 2시간 혈당은 135mg/dL.
야간 근무 중 식사라는 걸 감안하면, 나로서는 꽤 선방한 숫자였다. 만약 ‘도토리묵은 살 안 찌고 몸에 좋다’는 말만 믿고 국물에 밥까지 말아 후루룩 다 먹었다면, 아마 혈당계는 200mg/dL을 넘겨 경고음을 울렸을지도 모른다.

도토리묵이 나쁜 음식은 아니다. 묵밥이라는 메뉴 자체도 문제는 아니다.
결국 그걸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먹기로 선택하느냐가 혈당을 가른다.

당뇨인에게 묵밥은 “절대 먹지 말아야 할 금지 식품”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얼마든지 먹어도 되는 안전식”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내 기준에서 묵밥은, “정신 차리고 먹어야 하는 조건부 허용 식품”쯤으로 적어두고 싶다.

오늘 밤, 당신 식판 위에 묵밥이 올라온다면, 그 차가운 국물의 유혹을 조금만 이겨내 보길 바란다. 건더기 위주로 먹고, 국물과 밥을 남기는 그 작은 선택 하나가, 내일 아침 공복 혈당 숫자를 바꿔 줄지 모른다.


오늘의 한마디

“묵밥의 국물을 남기는 일은 음식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내 혈관 안에 쌓일 찌꺼기를 미리 덜어내는 일이다.”


참고 자료 및 면책 안내

본 글은 야간 교대근무를 하며 당뇨를 관리하는 한 사람의 경험과 식품영양성분 데이터(식약처, 램프쿡 등)를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다.
표에 제시된 영양 성분 수치는 조리법과 식당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글은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할 수 없으며,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반드시 담당 의료진 및 임상영양사와 상의하여 식단을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