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인의 회사밥] 극한의 현실 속, 탄수화물 끊지 않고도 혈당을 붙잡는 직장인의 생존 전략
발자취 | 건강 에세이
“오늘 한 끼를 어떻게 버텼는가”
오늘 점심시간.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오전 근무를 마치고, 어김없이 회사 식당으로 걸어갔다. 입구에 걸린 메뉴판을 보는 순간, 피곤하던 눈이 잠깐이나마 반짝였다. 지난주 ‘탄수화물 폭탄 세트’에 비하면 오늘은 좀 더 숨통이 트이는 조합이었다. 영양사님과 조리사님께 속으로 감사하며 식판을 들었다.

메인 반찬은 배추 듬뿍 들어간 김치국, 철판 위에 수북하게 쌓인 달걀스크램블, 그리고 고구마순 무침. 그런데 내가 제일 먼저 찾는 샐러드 코너가 텅 비어 있었다.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체념했다. 선택지가 적을수록 전략은 더 뚜렷해진다. “있는 것 중에서 제일 나은 걸 고른다.” 그게 오늘의 기준이었다.
자리에 앉아 첫 입으로 집은 건 고사리무침이라고 착각했던 고구마순 무침. 입안에 넣자마자 ‘아, 이건 고사리가 아니구나’ 싶었다. 부드러울 줄 알았는데 질기고 오래 씹어야 하는 식감. 하지만 샐러드가 없는 날엔 이 질긴 식이섬유라도 고맙다. 천천히 씹으며 “이 정도 질기면 식후 혈당은 조금은 버텨주겠지” 하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김치국은 국물 대신 건더기만 건져 먹었다. 짠 국물은 이제 습관적으로 피한다. 단순히 나트륨 때문만이 아니라, 뜨거운 국물로 배가 먼저 차버리면 정작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제대로 못 챙기니까. 그냥 “건더기는 식이섬유”라는 단순한 공식만 적용하고 넘어간다.
달걀스크램블은 오늘 메뉴 중 가장 믿을 만한 단백질.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입안을 잠깐 쉬게 해준다. 단백질과 지방이 혈당을 잡아준다는 건 몸으로 이미 익힌 사실이라, 이 반찬은 편하게 먹는다. 반찬을 충분히 먹고 나니 밥을 얼마나 먹을지가 고민됐다. 결국 반 공기의 반만 먹고 숟가락을 내려놨다. 이 정도면 오늘도 ‘최악은 피했다’는 기분이 든다.

겉으로 보면 그냥 평범하고 부실한 한 끼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당뇨인의 식사는 메뉴 하나하나가 ‘생존 전략’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당뇨인도 탄수화물을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이유 3가지
탄수화물을 피하면 혈당이 안 오른다? 말은 맞다. 하지만 지속은 안 된다. 그리고 그 대가가 크다.
사람 몸에는 포도당을 기본 연료로 써야만 유지되는 기관들이 있다. 뇌, 적혈구, 그리고 신장 피질이 대표적이다. 지방이나 단백질로 대체하기 어려운 곳들이다. 이 장기들은 포도당 공급이 끊기면 바로 기능이 떨어진다.
미국 의학연구소(IOM, 2005):
“성인은 하루 최소 130g의 탄수화물을 섭취해야 뇌 기능이 유지된다.”
— 단, 당뇨인은 이 최소량을 정제 탄수화물이 아닌 복합 탄수화물 중심으로 조절해야 한다고 명시.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줄이면 생기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1) 뇌 피로 → 업무 효율 급락
탄수화물 부족은 곧바로 집중력 저하, 만성 피로,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특히 교대근무·기계오퍼레이터·정밀업무 비중이 큰 직장인에게는 치명적이다.
혈당은 낮아도, 업무 효율은 망가지고 위험도 커진다.
2) 근육 손실 → 혈당 조절 능력 악화
에너지가 부족하면 몸은 근육을 먼저 분해해 포도당을 만든다.
근육이 줄면 기초대사량은 떨어지고, 포도당 처리 능력도 약해진다.
결국 탄수화물을 피하려다가 더 나쁜 몸 상태를 만든다.
3) 지속 가능성 실패 → 결국 폭식
탄수화물 제로 식단은 인간의 식욕 본능에 반한다.
며칠은 가능해도, 회식·야간 근무·스트레스가 겹치는 실제 직장 환경에선 유지가 불가능하다.
결과는 대부분 똑같다: 참다 폭발 → 흰빵·면류 폭식 → 혈당 롤러코스터.
결론은 단순하다.
탄수화물을 끊는 게 아니라, ‘질 좋은 복합 탄수화물’로 조절해 먹는 것.
오늘 내가 밥을 반의 반만 먹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복합 탄수화물 vs 정제 탄수화물

회사 식당에서 현실적으로 통하는 3가지 전략
선택지가 적은 날일수록 효과가 크다.

1) 국물은 버리고, 건더기부터 먹기
배추·무·고구마순 같은 질긴 식이섬유는 혈당 흡수를 늦춘다.
2) 단백질을 첫 입으로
달걀스크램블·닭가슴살·생선구이는 혈당 스파이크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패.
3) 탄수화물은 ‘마지막에 조금’
섬유질→단백질→밥 순서만 지켜도 혈당이 훨씬 안정된다.
나는 왜 이런 평범한 한 끼를 기록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건강식단은 먹을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매일 바뀌는 회사 메뉴, 예측불가한 근무표, 갑작스러운 일정.
완벽한 식단은 없다.
대신 최악을 피하는 작은 전략은 있다.

오늘은 샐러드도 없었고, 메뉴도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국물을 버리고, 질긴 식이섬유부터 먹고, 가장 안전한 단백질을 충분히 먹고, 밥은 최소화했다.
이 작은 실천들이 결국 내 혈당을 지켜준다.
이 기록들 하나하나가 모여 ‘발자취블로그’를 채운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보면, 이 작은 선택들이 내 몸을 지켜준 흔적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오늘의 한마디
“완벽한 식단은 없다. 다만, 최악을 피하려는 작은 선택만이 있을 뿐.”
면책 고지 (Disclaimer)
본 글은 개인적 경험과 일반적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것이며 전문적 의료 조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개인 건강 상태에 따른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