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 건강 에세이
“현실 속에서 지켜낸 한 숟가락의 균형이, 결국 몸의 리듬을 만든다.”
선택할 수 없는 식판 속에서

회사 식당의 메뉴는 언제나 정해져 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사골우거지탕, 돈저냐, 어묵볶음, 참나물무침, 그리고 김치.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으면 늘 그렇듯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당뇨약을 복용하는 내게 이 식판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계산표가 된다.
밥은 반 공기, 국물은 건더기 위주로, 돈저냐는 한 조각만.
이제는 눈대중으로 탄수화물 양이 어느 정도인지, 기름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감이 온다.
식판 위 숫자들을 조용히 맞춰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
“한국 성인의 하루 나트륨 권장 섭취량은 2,000mg 미만이며,
짠 국물 섭취는 고혈압과 당뇨 합병증 위험을 동시에 높인다.”
— 질병관리청,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 개정판 (2020)

사골우거지탕의 구수한 향에 마음이 흔들리지만,
국물은 최소한으로. 그 대신 참나물무침을 더 떠서 식판의 초록색을 채운다.
그 향긋한 풀내음이, 오늘의 균형이 된다.
혈당은 습관의 합으로 움직인다
당뇨약은 약이지만, 생활의 규칙을 만들어주는 알람이기도 하다.
아침마다 메트포르민 한 알을 삼키며 시작하는 하루.
그 작은 알약은 내 몸에 “지금부터 조심하자”는 신호를 보낸다.
약은 혈당을 안정시키지만, 식사 습관이 엉망이면 효과는 반감된다.
그래서 식사 순서를 바꾸었다.
먼저 채소, 그다음 단백질, 마지막으로 탄수화물.
처음엔 어색했지만, 몸이 금방 반응했다.
“식사 순서를 바꾸어 채소를 먼저 섭취하면, 포도당 흡수 속도를 늦춰
식후 혈당 상승을 평균 20~30%까지 낮출 수 있다.”
— 미국당뇨병학회(ADA), Annual Scientific Sessions, 2019
밥 한 숟가락 줄이기보다, 순서를 지키는 게 훨씬 쉬웠다.
그리고 이건 의지보다 습관의 문제였다.
누적된 습관이 혈당 그래프를 바꾼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식판 위의 현실적 조정
회사 식당은 영양학 교과서처럼 운영되지 않는다.
단가와 인원 수에 맞춘 현실적인 메뉴.
하지만 그 안에서도 몸은 조절할 수 있다.
나는 식판 위에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탄수화물의 양보다 질을 본다.
흰쌀밥이 주어지면, 밥 양을 줄이고 대신 반찬의 채소 비율을 늘린다.
잡곡밥이 나오는 날은 조금 더 먹는다.
2. 국물은 반만.
아무리 담백해 보여도 대부분 나트륨이 많다.
국물보다 건더기를 중심으로 먹는다.
3. 후식 대신 물.
당뇨약 복용 후엔 커피나 음료보다 물이 혈당 유지에 좋다.
특히 점심 후 미지근한 물 한 컵은 포만감에도 도움이 된다.
이 단순한 세 가지 습관이 약보다 더 오래 몸을 지켜줬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3개월이 지나자 자동으로 몸이 기억했다.
커피 한 잔의 간격
식사 후 자판기 앞에 서면, 늘 그 유혹이 있다.
“오늘만 믹스커피 한 잔 괜찮겠지?”
하지만 ‘오늘만’이 쌓이면 ‘습관’이 된다.
그래서 블랙커피를 택했다.
처음엔 썼다. 당 떨어진 느낌이 싫었고, 뭔가 허전했다.
그런데 2주쯤 지나자, 그 쓴맛이 편해졌다.
단맛 없는 커피 한 모금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
이젠 그게 오후의 루틴이 되었다.
“카페인은 인슐린 감수성에 영향을 줄 수 있으나,
하루 2잔 이하의 블랙커피는 제2형 당뇨 위험을 오히려 낮춘다.”
— 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 Coffee and Health Study, 2021

커피를 손에 쥐고 창가에 서면, 공장의 소음이 잠시 멎는다.
몸이 아닌 마음이 정리되는 시간.
그게 내 혈당 관리의 또 다른 휴식이다.
약의 리듬, 삶의 리듬
당뇨약을 먹는다는 건 병을 가진 게 아니라,
‘리듬을 새로 배운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아침 7시 약 한 알, 7시 30분 식사, 12시 점심, 6시 저녁.
이 리듬이 조금만 어긋나도 몸은 바로 반응한다.
속이 쓰리거나, 손끝이 저리거나,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래서 이젠 약통보다 시계를 더 자주 본다.
“메트포르민은 식사와 함께 복용해야 위장 장애를 줄이고,
식후 혈당 조절 효과를 극대화한다.”
— 대한당뇨병학회, 「당뇨병 진료지침」 (2023)

식사와 약의 간격을 지키는 일은 작은 일이지만,
그 하나가 하루 전체를 안정시킨다.
몸이 평온하면 마음도 따라온다.
직장인 당뇨 관리, 현실적 팁 5가지
현장에서 일하며 느낀 점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이건 책에서 배운 게 아니라, 몸으로 실험한 결과다.
1. 식사 속도를 늦춘다.
10분 만에 밥을 끝내면 혈당이 급격히 오른다.
한입 한입 20초 이상 씹으면 소화와 포만감이 좋아진다.
2. 도시락이 가능하다면, 반조리 채소를 챙긴다.
구내식당 메뉴가 기름지거나 단날엔, 삶은 브로콜리나 오이 한 줌이라도 곁들인다.
3. 간식은 ‘간식답게’.
배고프면 혈당이 급격히 떨어져 피로감이 커진다.
무염 견과나 삶은 달걀 한 개면 충분하다.
4. 하루 15분이라도 걸어라.
점심 후 산책은 혈당을 부드럽게 낮춰준다.
실제로 걸은 날은 오후 졸음이 현저히 줄었다.
5. 스트레스를 기록하라.
피로와 혈당은 밀접하다.
혈당이 오른 날은 대부분 감정의 파동이 컸다.
감정을 기록하면 패턴이 보인다.
“건강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습관의 미세한 조정으로부터 시작된다.”
—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Report, 2022
한 숟가락의 의미
회사 식당의 식판은 여전히 단조롭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게 많다.
한 숟가락 덜고, 나물을 더 올리고, 커피를 바꾸는 것.
이 단순한 조정이 쌓여 내 몸을 바꿔왔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다시 기계 앞에 앉는다.
소음 속에서도 참나물의 향이 희미하게 남는다.
그게 오늘의 작은 위안이다.
그리고 내일도 이어갈, 나만의 리듬이다.
오늘의 한마디
“하루 한 끼의 조심스러움이, 내 몸의 내일을 바꾼다.”
면책 안내
본 글은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건강 에세이입니다.
의료적 판단이나 처방이 필요한 경우 전문의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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