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 건강 에세이

회사 구내식당은 전쟁터다. 누군가에게는 오전 업무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맛집 탐방’의 장소일지 모르지만, 혈당을 관리하고 불규칙한 교대 근무를 버텨야 하는 나에게는 매일매일이 ‘선택과 절제’의 시험장이다.
식판을 들고 배식대 앞에 서는 그 짧은 순간, 나는 수많은 유혹과 싸운다. 갓 볶아낸 제육볶음의 매콤 달콤한 냄새, 윤기가 흐르는 쌀밥, 그리고 형형색색의 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 예전 같으면 고민 없이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식판 가득 채웠을 것이다. “일하는 데 힘써야지”라는 핑계는 언제나 유효했으니까.
하지만 당뇨라는 불청객이 찾아오고, 위장이 예민해진 이후로 내 점심시간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은 그 치열했던 점심시간의 내면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왜 나는 화려한 생 양배추 샐러드를 지나쳐, 아무런 간도 되어 있지 않은 슴슴한 ‘데친 양배추’를 집어 들었는지에 대해서.
식판 앞에서 켜지는 생존 본능, '혈당 계산기'
오늘 점심 메뉴는 전형적인 한국 직장인의 밥상이었다.
[오늘의 메뉴]
- 밥/국: 쌀밥, 북어국
- 메인 반찬: 제육볶음, 두부조림
- 채소 반찬: 키위 드레싱 양배추 샐러드, 데친 양배추(숙쌈)
- 기타: 배추김치, 쌈장
식판을 집어 드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자동으로 계산기가 켜진다. 칼로리 계산기가 아니다. 바로 ‘혈당과 위장 부담’을 예측하는 생존 계산기다.
‘저 제육볶음 양념, 끈적해 보이는 게 물엿이 꽤 들어갔겠군.’ ‘샐러드 드레싱은 색깔만 봐도 당류가 10g은 넘겠어.’ ‘오늘 야간 근무 들어가야 하는데, 생채소를 와구와구 씹어 먹으면 새벽에 속이 쓰리지 않을까?’
남들이 “오늘 메뉴 괜찮네” 하며 지나가는 그 1~2초 사이에, 나는 내 몸의 컨디션과 오후 업무 강도, 그리고 혈당 수치를 복합적으로 시뮬레이션한다. 이 과정이 처음에는 피곤하고 유별나 보였지만, 이제는 나를 지키는 필수적인 루틴이 되었다.
첫 번째 선택: 화려한 샐러드 vs 투박한 데친 양배추
채소 코너에 다다랐다. 두 가지 선택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왼쪽에는 잘게 썬 생 양배추 위에 연두색 키위 드레싱이 듬뿍 뿌려진 ‘생 양배추 샐러드’. 보기만 해도 상큼해 보이고,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해 보였다. 오른쪽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축 늘어진 ‘데친 양배추’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투박한 쌈장(된장) 종지가 있을 뿐이었다.
시각적인 매력만 따지자면 당연히 왼쪽이다. 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소스 하나 묻어 있지 않은 데친 양배추를 집게로 집어 올렸다.
‘건강한 맛’이라는 가면을 쓴 드레싱의 배신
많은 직장인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다. ‘풀을 먹으면 살이 안 찌고 혈당도 괜찮겠지’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회사 구내식당처럼 대량 급식을 하는 곳에서는 채소의 풋내를 잡고 대중적인 맛을 내기 위해 드레싱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그 ‘공’이란 대게 설탕과 액상과당이다.
샐러드 드레싱의 숨겨진 진실
"시판 드레싱이나 단체 급식용 드레싱에는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양의 단순당(설탕, 액상과당)이 첨가된다. 특히 마요네즈 베이스나 과일 맛 드레싱은 지방과 당분이 동시에 높아, 채소를 먹는다는 안도감 속에 '혈당 스파이크'를 유발하는 주범이 될 수 있다. 당뇨 환자에게 샐러드는 '무엇을 뿌리느냐'가 채소의 종류보다 더 중요하다."
(출처: 대한당뇨병학회 식단 가이드 및 식품영양학 자료 재구성)
입은 즐겁지만 췌장은 괴로운 맛. 나는 그 달콤한 유혹을 지나쳤다. 대신 데친 양배추 옆에 있는 된장을 아주 조금, 종지에 담았다.
나는 양배추 한 장마다 된장을 찍어 먹지 않는다. 데친 양배추 특유의 달큰한 맛을 느끼며 2~3번 그냥 씹어 넘기다가, 입이 너무 심심해질 때쯤 한 번만 된장을 살짝 찍는다.
이 방식의 핵심은 ‘조절 가능성’이다. 샐러드는 이미 소스가 뿌려져 있어 내가 당분을 덜어낼 수 없지만, 데친 양배추와 된장은 ‘내가 얼마나 먹을지’를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이것이 식판 앞 주도권을 쥐는 첫 번째 전략이다.
교대 근무자의 위장, 생(生)보다 숙(熟)을 원한다
내가 생 양배추를 피한 이유는 혈당 때문만은 아니다. 더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소화’다. 교대 근무를 하며 밤낮이 바뀌는 생활을 하다 보면, 위장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수면 부족은 소화 효소 분비를 줄이고 위장 운동을 둔하게 만든다.
이럴 때 식이섬유가 억세고 단단한 생 양배추를 한 대접 먹으면 어떻게 될까? 오후 내내, 혹은 야간 근무 내내 뱃속에서 가스가 차고 더부룩함과 싸워야 한다.
익힌 양배추가 위장에 주는 선물
"채소를 익히면 비타민 C와 같은 열에 약한 영양소는 일부 손실될 수 있다. 하지만 열을 가하면 식물성 세포벽이 부드러워져 체내 소화 흡수율은 오히려 높아진다. 특히 위장이 약하거나 스트레스로 소화 불량이 잦은 사람에게는 생채소보다 익힌 채소가 장기적으로 섭취하기에 훨씬 유리하며, 부피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식이섬유를 섭취할 수 있다."
(참고: 임상영양학 조리 원리)
나는 ‘비타민 C 100% 섭취’라는 완벽한 목표보다, ‘먹고 나서 속이 편안한 오후’를 택했다. 생 양배추 먹고 속이 뒤집혀서 채소를 멀리하게 되는 것보다, 데친 양배추를 꾸준히 먹는 것이 내 몸에는 훨씬 이득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생 양배추 샐러드 vs 데친 양배추 비교
| 비교 항목 | 생 양배추 샐러드 (드레싱 포함) | 데친 양배추 (숙쌈) |
| 식감 및 소화 | 조직이 단단하고 거칠어 소화 시간이 김 | 열에 익혀 조직이 부드러워 소화가 편함 |
| 주요 영양소 | 수용성 비타민(C, U) 보존에 유리 | 식이섬유 농축, 소화 흡수율 증가 |
| 혈당 영향 | 드레싱의 당분으로 급격한 상승 위험 | 완만한 흡수, 혈당 방어에 탁월 |
| 위장 반응 | 가스 참, 속 쓰림 유발 가능성 (예민한 경우) | 위 점막 자극 최소화, 속이 편안함 |
| 나의 선택 | 컨디션 최상인 날 아주 가끔 | 교대 근무/피로할 때 주력 선택 |
두 번째 선택: 밥도둑 제육볶음 vs 담백한 두부조림
채소를 담고 나니 메인 반찬 코너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직장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메뉴 중 하나인 제육볶음(고추장 불고기), 그리고 그 옆엔 두부조림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식판을 든 손이 제육볶음 쪽으로 움찔했다. 붉은 양념에 윤기가 흐르는 고기는 본능적으로 침을 고이게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윤기’의 정체를 안다. 식당에서 파는 제육볶음이 맛있는 이유는 고기가 좋아서가 아니다. 설탕과 물엿, 그리고 맛술이 듬뿍 들어갔기 때문이다.
한식 양념의 함정, '보이지 않는 설탕'
우리는 흔히 맵고 짠맛(나트륨)만 경계하지만, 당뇨인에게 진짜 적은 맵고 짠맛 뒤에 숨겨진 ‘단맛’이다.
한식 조림/볶음 요리의 당분 경고
"제육볶음, 닭갈비, 떡볶이와 같이 고추장을 베이스로 하는 볶음 요리는 맵고 짠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가정 조리법보다 훨씬 많은 양의 설탕과 올리고당을 사용한다. 고기의 지방과 양념의 당분이 결합된 형태는 소화되면서 혈당을 급격히 올리고, 체지방으로 축적되기 가장 쉬운 형태가 된다."
(출처: 당뇨 식사 요법 가이드)
제육볶음을 밥 위에 얹어 비벼 먹는 순간, 그것은 단백질 섭취가 아니라 ‘고지방 고당분 탄수화물 폭탄’을 먹는 것과 다름없다.
차악의 선택, 두부조림
나는 제육볶음 앞을 지나쳐 두부조림을 담았다. 물론 두부조림도 양념이 되어 있다. 고춧가루가 베이스지만 간장과 약간의 설탕이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재료의 본질이 다르다.
- 제육볶음: 동물성 지방 + 다량의 당분 양념
- 두부조림: 식물성 단백질 + 상대적으로 적은 당분 양념
두부조림의 양념은 겉에 묻어 있는 정도고, 속은 담백한 두부 그대로다. 밥반찬으로 먹기에 간은 충분하지만, 제육볶음처럼 밥을 계속 부르는 ‘중독적인 단맛’은 덜하다. 나는 두부조림을 평소보다 조금 넉넉히 담았다. 밥 양을 줄이는 대신 두부로 포만감을 채우기 위해서다.
제육볶음 vs 두부조림 영양적 선택 기준
| 메뉴 구분 | 제육볶음 (고추장 불고기) | 두부조림 |
| 주재료 | 돼지고기 (지방 포함 부위) | 두부 (식물성 단백질) |
| 양념 베이스 | 고추장 + 설탕/물엿 (점성 높음) | 고춧가루 + 간장 (상대적으로 묽음) |
| 혈당 영향 | 고지방+고당분 시너지로 식후 혈당 급상승 | 단백질 위주로 혈당 완충 작용 |
| 섭취 유혹 | 밥을 비벼 먹게 만듦 (탄수화물 과다 유도) | 두부 자체로 포만감 형성 가능 |
| 오늘의 결정 | 과감히 패스 (냄새만 맡음) | 주메뉴로 선택 (단백질 보충) |
100점짜리 식단보다 중요한 건 '반복 가능성'
식판을 채우고 자리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현미밥도 아니고 흰 쌀밥이었고, 두부조림도 완벽한 저염식은 아니었다. 엄격한 기준으로 보자면 100점짜리 당뇨 식단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점심에 만족한다. 아니, 안도한다. 건강 정보 프로그램이나 책에서는 늘 "생으로 먹어라", "간을 하지 마라", "흰 쌀밥은 독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선택권이 제한된 구내식당에서 그 기준을 완벽히 지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완벽하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폭식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나 과도한 절제 뒤에 찾아왔다.
내게 중요한 건 ‘지속 가능성’이다. 매일 점심, 아주 작은 선택들을 반복하는 힘.
- 화려한 드레싱 대신 투박한 된장을 찍는 것.
- 자극적인 고기 반찬 대신 담백한 두부를 고르는 것.
- 채소를 먼저 먹고 밥을 나중에 먹는 순서를 지키는 것.
이 70~80점짜리 선택들이 모여 내일도, 모레도 지치지 않고 식단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준다.
선택지는 좁아도 기준은 내가 정한다
회사 점심시간, 식판 위의 선택지는 항상 넉넉하지 않다. 메뉴는 영양사님이 정하고, 조리법은 조리사님의 손에 달려 있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이다.
하지만 그 좁은 선택지 안에서도 우리는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당뇨, 교대 근무, 예민한 위장. 이 세 가지 악조건을 달고 사는 나에게 오늘 점심의 ‘데친 양배추’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몸을 아끼고 존중하겠다는 작지만 확실한 의지였다.
오늘 당신의 점심 식판은 어땠는가? 혹시 무심코 뿌린 드레싱이나 습관적으로 담은 맵단짠 반찬들이 놓여 있지는 않았는가? 내일 점심에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맛 대신, 조금은 심심해도 내 몸이 편안해하는 메뉴를 하나쯤 골라보시길 권한다.
나는 내일도 비슷한 메뉴가 나온다면, 주저 없이 또다시 슴슴한 데친 양배추를 집어 들 것이다. 그 꾸준한 ‘발자취’가 훗날, 건강해진 몸으로 나에게 보답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마디
"식판 위에서 일어나는 작은 거절들이 모여, 내일의 건강이라는 큰 긍정을 만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더 나은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 태도면 충분하다."
면책 고지
이 글은 당뇨를 가진 한 직장인의 식사 경험과 개인적인 의견을 정리한 것으로, 특정 음식이나 식단을 의학적으로 권장하거나 대체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모든 건강 관련 결정은 각자의 건강 상태와 복용 중인 약을 고려해,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담 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생활습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교대 근무 필독: 매주 바뀌는 밤 11시, 허기는 ‘리듬 붕괴’의 비명이다 (6) | 2025.11.17 |
|---|---|
| 안 짰는데 하루치 나트륨?? 감칠맛이 숨긴 함정, 몸이 보내는 SOS 신호 (17) | 2025.11.11 |
| 꼬마김밥 괜찮을까? 당뇨 관리 속 '현실 식단'의 고민: 밥 1/3로 줄였을 때 놓치기 쉬운 3가지 (균형의 미학) (10) | 2025.11.10 |
| 퇴근 후 야식 유혹, 단감 두 개 & 새벽 각성 유발하는 콘센트 불빛: 직장인의 수면 부채 극복기 (16) | 2025.11.05 |
| 선택은 없지만, 전략은 있다 : 사골우거지탕과 돈저냐의 하루 (13) | 2025.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