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 건강 에세이
주야간 2교대, 매주 찾아오는 생체 시계 혼란이 만든 가짜 허기의 정체. 렙틴/그렐린 롤러코스터를 막는 현실적인 교대 근무자를 위한 ‘가짜 허기 구별법 3가지’와 장기적인 건강 전략.
《건강하게 살아남기》 Ep.06
퇴근 후 11시, 매주 새롭게 찾아오는 ‘허기의 순간’

밤 11시. 이번 주가 야간 근무 주간이라면, 집 문을 여는 순간 밀려오는 것은 단순한 피로만이 아니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르는 사이, 어느 순간 ‘정해진 루틴’처럼 슬그머니 올라오는 배고픔 같은 감각.
하지만 이 감각은 실제 배고픔과는 조금 다르다.
지난주 주간 근무 때 규칙적으로 먹어왔던 식사 시간을 몸이 기억해 “지금쯤 밥 들어왔어야 하는데?” 하고 착각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주야간 2교대를 오래 하면 몸의 신호들이 서로 섞여버린다.
졸린데 허기가 밀려오고, 피곤한데 배고픈 것 같고, 뭔가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이 생긴다.
나 역시 그랬다.
감 두 개, 찐만두 네 개, 계란말이, 사태살 한 덩어리…
뭐든 먹으면 금방 잠들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잠은 오지 않고,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쯤 깨서 뒤척이며 남은 밤을 허비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허기, 정말 배고픔이 맞나?”
이 허기가 ‘진짜 배고픔’이 아닐 수 있는 과학적 이유

① 주야간 교대가 만든 생체 시계의 혼란
우리 몸에는 모든 리듬을 조절하는 ‘마스터 시계’, 즉 뇌의 시교차상핵이 있다.
문제는 이 시계가 주간 → 야간으로 바뀌는 데 3~4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2교대 근무자는 일주일마다 리듬이 바뀐다.
몸은 적응할 틈도 없이 다시 흔들린다.
이건 매주 ‘만성 시차적응’을 겪는 것과 같다.
그러니 몸이 피곤함과 허기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몸은 혼란에 빠질 때 가장 원초적인 신호 하나를 꺼내든다.
“먹어라.”
배고파서가 아니라, 흔들리는 리듬을 붙잡기 위한 몸의 최후의 표현이다.
② 식욕 호르몬의 렙틴–그렐린 롤러코스터
“수면 부족과 과로는 식욕 자극 호르몬 그렐린(Ghrelin)을 증가시키고, 포만 호르몬 렙틴(Leptin)을 감소시켜 실제 배고픔이 아닌 ‘허기 같은 감각’을 만들어낸다.”
— 미국 내분비학회(Endocrine Society), Sleep, Fatigue and Appetite Regulation, 2021.03.
교대 근무자는 이 호르몬의 균형이 매주 출렁인다.
특히 야간 근무 주간에는 그렐린이 치솟고 렙틴은 바닥을 치면서
조절되지 않는 허기가 찾아온다.
이건 단순한 ‘식욕 관리 실패’가 아니라
생체 시계가 흔들리며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③ 만성적인 혈당 스파이크와 저혈당 공백
야간 근무 중에 탄수화물 섭취가 줄면서
혈당이 낮아지고, 이 공백이 퇴근 후 피로와 함께 몰아친다.
퇴근 후 탄수화물을 먹으면 혈당이 급하게 치솟는 스파이크가 나타나고
그 뒤 내려가는 과정에서
몸은 다시 허기 신호를 보낸다.
“배고프다”
가 아니라,
“혈당 떨어진다! 깼어라!”
하는 신호다.
이 흐름이 반복되면
비만, 대사증후군의 위험은 최대 1.77배까지 올라간다.
밤 11시 허기가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

(1) 늦은 시간 간식 → 새벽 각성 유발
"늦은 밤 탄수화물 섭취는 혈당을 빠르게 상승시킨 뒤, 수면 중 혈당 하강을 촉발한다. 이는 새벽 각성의 주요 원인이 된다."
— 하버드 의대 수면·대사연구소(HMS Sleep & Metabolism Lab), Nighttime Carbohydrates and Arousals, 2020.11.
이건 정말 사실이다.
혈당이 출렁일 때 몸은 위급 상황처럼 반응해
코르티솔을 분비하며 깨어난다.
그래서 새벽 네 시쯤 마치 알람처럼 깨는 것이다.
(2) 수면의 질 저하 → 만성 질환 위험 증가
IARC는 교대 근무를 잠재적 발암요인으로 분류했다.
리듬 붕괴는 심혈관질환, 당뇨병, 우울증 위험을 꾸준히 높인다.
밤 11시의 작은 간식이
결국 다음날과 다음 주, 그리고 몇 년 뒤까지 흔든다.
가짜 허기를 착각하지 않기 위한 현실적 전략 3가지

두루뭉술하게 들릴 수 있는 조언은 싫다.
교대근무자의 현실 속에서 진짜 가능한 전략만 정리했다.
✦ ① 5분 정지 규칙 + ‘리듬 비교’
샤워 직후 5분만 멈춘다.
서서 깊게 몇 번 호흡한다.
그리고 스스로 묻는다.
“지난주 주간 근무 때 이 시간엔 뭐 하고 있었지?”
이 질문 하나로
허기인지, 리듬 붕괴인지 감각이 명확해진다.
✦ ② 물 150ml + ‘씹는 움직임’
150ml는 생각보다 절묘한 양이다.
속이 허전해지는 걸 막으면서, 피로성 허기를 꺼준다.
여기서 해결이 안 되면 ‘씹는 행위’로 전환한다.
오이·당근·견과류 한 줌이면 충분하다.
저칼로리·저GI라 부담이 없다.
✦ ③ 미니 단백질로 새벽 각성 차단
단순당(과일)이나 탄수화물은 새벽 각성을 부른다.
대신 단백질로 마무리하면 혈당 출렁임이 거의 없다.
삶은 계란 흰자 1개
닭가슴살 50g
두부 한 조각
이 정도면 밤에도 무리가 없다.
✦ 보너스 — 🌑 침실을 ‘암실’에 가깝게
퇴근 후 햇빛 차단
→ 암막 커튼
→ 콘센트 불빛 제거
이 세 가지가 교대근무자의 수면 질을 결정한다.
리듬의 비명 속에서 나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

밤 11시의 허기는,
사실 배가 고픈 게 아니었다.
일주일 단위로 리듬을 바꿔야 하는 몸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내는 작은 비명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걸 모른 채 늘 뭔가 먹었다.
먹으면 편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허기처럼 보였던 그 감각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몸의 신호였다는 걸.
먹는 게 아니라 쉬어야 했던 시간이었다는 걸.
그래서 요즘은 밤 11시 허기가 올라와도
무조건 채우지 않는다.
조금 들여다본다.
“아, 이번 주도 리듬 바꾸느라 힘들었구나.”
그렇게 말해주면
묘하게 가벼워진다.
허기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허기 뒤에 숨어 있던 나를 바라보는 시간.
그 시간들이 조금씩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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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마디
“일주일마다 흔들리는 생체 시계 속에서, 밤 11시 허기는 지난 리듬과의 작별이다. 비명 대신, 오늘은 휴식을 건네본다.”
면책 안내
본 글은 교대 근무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 기록이자 일반적인 건강 정보일 뿐이며, 특정 질환의 진단·치료·예방을 위한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상태, 혈당·혈압·수면 패턴은 개인마다 크게 다를 수 있으므로, 식습관 변경이나 생활 리듬 조정은 반드시 주치의 및 전문 의료진과 상담 후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 하여 발생하는 어떠한 결과에 대해서도 작성자는 법적·의학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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